부산광역시 사상구의 '사상' 지명유래와 사상구의 간략한 역사

부산 사상구, '사상(沙上)'이라는 지명의 숨겨진 이야기 부산광역시 서부에 위치한 사상구. 오늘날에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과 물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 이름 '사상(沙上)'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사상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사상구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 유래와 변천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상(沙上)’ 지명의 유래 ‘사상(沙上)’이라는 명칭은 지형적 특성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사(沙)'는 모래, '상(上)'은 위를 뜻하는 한자로, ‘모래 위에 형성된 땅’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상구가 낙동강 하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오랜 시간 동안 강물이 흘러들며 모래와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충적지대 입니다. 그 위에 자연 마을과 농경지가 형성되었고, 이 지형적 특성을 반영해 ‘사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예로부터 낙동강 유역은 비옥한 평야와 풍부한 수자원 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던 곳이었고, 모래가 많은 땅이라는 특성은 주민들의 삶과 문화에도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2. 사상구의 역사적 변천 사상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는 동래도호부에 속해 있었으며, 여러 자연마을과 농촌 지역이 넓게 퍼져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이 지역은 ‘사하면(沙下面)’과 ‘상하면(上下面)’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지금의 사상구는 그 두 지역을 합친 범위에 해당합니다. 낙동강이 인접해 있는 만큼 수운과 농업 활동이 활발했고, 경상도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중요한 경로로도 기능했습니다. 일제강점기 1914년 일제에 의해 전국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동래군 소속이던 사하·상하 두 면이 하나로 통합되어 ‘사상면(沙上面)’이라는 공식 명칭이 처음 등장합니다. 이 이름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되며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해졌습니다. 해방 이후 ~ 현대 19...

부산에서 살기 좋은 동네 10곳 총정리

부산에서 살기 좋은 동네 10곳 총정리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구 중동은 부산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주거 지역 중 하나입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센텀시티가 인접해 있어 생활 인프라가 뛰어나며,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 도시적 감성과 여유로운 해안 라이프를 동시에 누릴 수 있습니다. 고급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으며, 특히 마린시티와 인접해 있어 조망권이 뛰어난 주거지가 많습니다.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센텀시티, 서면, 남포동 등 부산의 주요 상업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교통도 편리합니다. 또한, 해운대구는 부산의 대표적인 국제적 관광지로, 다양한 외국인 관광객과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어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다와 인접한 만큼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며, 해양 레저 활동을 즐기기에도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수영구 민락동 민락동은 광안리 해수욕장과 수영강변을 따라 자리 잡고 있어 바다와 강이 어우러진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입니다. 해양 레저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며, 카페거리와 다양한 맛집이 형성되어 있어 젊은 층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밤이 되면 광안대교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어 주거 만족도가 높은 곳입니다. 또한, 교통도 편리하여 광안리, 해운대, 서면 등 부산 주요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민락동은 부산에서 밤 문화를 즐기기에도 최적의 장소이며, 해안도로를 따라 다양한 라이브 공연과 거리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동래구 온천동 온천동은 이름 그대로 부산에서 온천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동래온천이 위치해 있어 온천욕을 즐기기 좋으며, 인근에는 동래구청과 다양한 편의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생활이 편리합니다. 또한, 부산에서도 학군이 우수한 지역으로 평가받아 가족 단위 거주자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갖춘 온천동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주거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여...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 특징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뛰어난 교통망, 그리고 활발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부산에서도 주거 선호도가 높은 곳 중 하나입니다. 본 글에서는 남천동의 지명 유래, 역사, 지역적 특징, 부동산 및 생활 환경, 향후 발전 가능성 등을 정리하였습니다. 1. 남천동 개요 남천동은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속한 지역으로, 광안리 해수욕장과 인접한 해양 도시 의 특성을 가진 곳입니다. 부산에서도 주거 환경이 우수 하고, 편리한 교통망 과 문화·예술 인프라 가 조화를 이루는 지역입니다. 최근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향후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남천동은 단순한 주거 지역을 넘어, 부산의 대표적인 해양 레저 및 문화 공간 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바다와 접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다양한 해양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광안리와의 접근성이 뛰어나 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인 지역입니다. 2. 남천동의 지명 유래 2.1 '남천동'이라는 이름의 의미 남천동(南川洞)이라는 이름은 **'남쪽에 위치한 하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이 지역을 흐르던 하천(현재의 수영강 하류)과 관련이 깊습니다. 수영강과 맞닿아 있어 조선시대부터 해양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며, 현대에는 하천 주변의 공원과 상업 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지역은 원래 농경지와 어업이 중심이었던 곳으로, 산업화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해방 이후 부산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유입되었고, 이에 따라 남천동은 자연스럽게 주거 및 상업 지역으로 변화하였습니다. 3. 역사적 배경 3.1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조선시대에 남천동은 수군절도사가 주둔한 수영성 과 가까운 곳으로, 해안 방어와 어업이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부산이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남천동 일대도 변화하게 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에는 일본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서구식 도...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 개요

1. 민락동 개요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은 해안과 인접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지역으로, 최근 다양한 개발과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 및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민락동은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인 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해안 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 지명 유래 2.1 민락동의 의미 민락동(民樂洞)이라는 지명은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부터 주민들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해왔음을 반영하는 이름입니다. 2.2 지명의 유래 과거 민락동은 수영만 일대에 속해 있었으며, 어업과 해양 활동이 번성했던 지역입니다. 조선 시대부터 중요한 해안 지역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주거 및 상업 지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3. 역사적 배경 3.1 조선시대 조선시대 민락동은 동래현에 속한 지역으로, 수영만과 인접하여 해양 방어와 어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조선 수군이 활동하였으며, 해안 방어 기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3.2 일제강점기 부산이 개항되면서 일본인 거주지와 상업지구가 조성되었고, 민락동은 항만 시설 확충과 더불어 어업 및 수산업이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3.3 광복 이후 광복 이후 부산의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민락동은 주거지와 상업지구로서 발전하였고, 특히 해안가를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활발해졌습니다. 4. 지역적 특징 4.1 지리적 위치 민락동은 부산의 남동쪽 해안에 위치하여 수영만과 접하고 있으며, 광안리 해수욕장과 인접해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개요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은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인 도시 개발이 어우러진 지역이다. 과거 조선시대 수군절도사의 본영이 있던 곳으로, 오늘날에는 주거 및 상업지역으로 성장하며 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수영동의 지명 유래, 역사, 지역적 특징,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다룬다. 1. 지명 유래 수영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수군절도사가 주둔했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에서 유래되었다. ‘수영(水營)’이란 말 그대로 ‘수군의 군영’을 의미하며, 이는 당시 해안 방어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현재 수영구와 수영동의 명칭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 것이다. 2. 역사 2.1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삼한시대에는 변한에 속했으며, 이후 6가야 중 하나인 금관가야의 거칠산국에 속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신라의 행정구역에 편입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동래진이 설치되면서 해양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2.2 조선시대와 수군절도사영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수군을 강화하기 위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이는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적 결정이었으며, 수영동 일대는 수군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당시에는 좌수영성이 축조되어 수군이 주둔하였고, 현재도 일부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수영동은 군사적·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2.3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일제강점기에는 부산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수영동도 변화를 맞이했다. 동래군에 속했던 수영동은 1942년 부산부에 편입되었고, 이후 부산의 확장과 함께 발전하였다. 특히, 항만 개발과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주거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2.4 광복 이후와 현대 1949년 부산시로 편입된 후, 1995년에는 남구에서 분리되어 수영구가 신설되었다. 이후 수영동은 부산의 핵심 주거지로 자리 잡았으며, 광안리 해변과의 접근성이 좋아 관광 및 상업 기능도 확대되었다. 현재는 주거, 상업, 문화가...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하분마을

마을 개요 하분마을은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에 위치한 전통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강진군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하며 장흥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주민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하분마을은 농업과 어업이 결합된 독특한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적인 농촌의 모습과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역사와 형성 하분마을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을 이름에서 '하분(下分)'은 '아래쪽 분기점'을 의미하며, 이는 강진군과 장흥군의 경계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합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하분, 중흥, 상분 마을이 합쳐져 '상흥리'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는 행정적인 구역 개편의 일환이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하분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남도소리 지리적 특성 및 자연환경 하분마을은 봉대산 자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넓은 하분간척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하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이 하천을 중심으로 좌측은 강진 하분마을, 우측은 장흥 대덕읍 신리마을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계절마다 변화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특히 봄과 가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합니다. 출처: 남도소리 문화유산과 전통 마을 중앙에는 약 500년 된 팽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나무 아래에는 약수터가 있으며, 과거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며, 매년 정월대보름에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행정구역 및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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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진면(會鎭面) 회진면은 전라남동 장흥군 하위 행정구역으로, 대덕읍과 더불어 장흥의 가장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대덕읍에 속했으나 1986년 분면하여 회진면이 되었다. 역사적 의미에서 회진은 주변 지역보다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육지 도로가 원활하지 않았을 때 조선시대애는 회령면으로 존속할 정도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대덕면관활로 들어간다.  회진의 다른 이름은 회령이며, 회령의 옛 지명은 마사량이었다. 마사량은 백제시대 회령이 마사량현(馬斯良縣)이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940년 태조 23년 회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까지 그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조선시대에는 회령포영(會寧浦營)이 있어 수군만호가 관할했다. 왜구의 침입이 잦은 탓에 이곳에 회령진성을 지어 왜구를 막았다. 회령진성 복구된 모습 회령진성 복구된 모습 회진면 행정구역 회진면에는 5개의 법정리와 16개의 행정리가 있다. 회진면 법정리 대리(大里) 덕산리(德山里) 신상리(新上里) 진목리(眞木里) 회진리(會鎭里) 회진면 행정리 진목리 진목리 이진목리 안삭금리 회진리 이회진리 선학동리 선자리 서구 덕흥리 남구 동구 덕산리 덕산리 장산리 노력리 대리 대리(大里) 신상리 신상리 신덕리 회진면 지명유래 대리(大里) 대리의 지명은 고려시대고 거슬러 가야 한다. 고려 말 도청리로 불렸고, 조선말에 대리고 개편한다. 덕산리(德山里) 노력도 / 노력항 회진면 덕산리 대섬 남쪽에 있는 긴 섬이다. 『해동지도』(장흥)에 회진 동쪽 우도(우산도) 남쪽에 노력도(老力島)가 표시되어 있다. 원래 장흥도호부 저도면에 속한 섬이었으나 1895년 완도군이 설치되면서 완도로 편입되었다. 그후 1914년 장흥군 대덕읍에 편입되었다가 1986년 장흥군 회진면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원래 노룡이 있는 섬이라 하여 노룡도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력도로 바뀌었는데, 지하수가 좋아 노인들이 장수하는 섬이라 하여 노력도라 부른다고도 한다. 지형이 용이 뛰어 오르...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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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읍(大德邑) 전라남도 장흥군 하위 행정구역 중의 하나이다. 회진면과 더불와 장흥군의 최남단에 속한다. 1980년 12월 1일 대덕면에서 대덕읍으로 승격한다. 회진리를 두었지만 1986년 분면하여 회진면이 되었다. 당시 회지면이 분면을 반대하여 많은 시위를 했다고 한다. 대덕면 소재일 때도 대덕과는 다르게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대덕읍은 한우가 유명한 장흥군 소재 답게 많은 한우를 기르고 있다. 가는 마을마다 한우 축사가 즐비해 외지 사람들은 쉽게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가학리는 마을 입구와 주변에 축사로 뒤덮여 있는 실정이다.  천관산 동남부의 평탄한 구릉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농업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양파, 파, 배추가 많이 나며, 특히 옛부터 대덕읍은 양배추를 많이 재배해 양배추 산지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대덕읍 ] 대덕읍 법정리 가학리 도청리 분토리 신리 신월리 연정리 연지리 옹암리 잠두리 대덕읍 지명유래 가학리(駕鶴里) 가학은 학이 많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도 학처럼 생겼다고 한다. 대덕읍에서 삭금마을로 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대덕천이 흐르는 주변은 지대가 낮아 가학은 약간 산쪽으로 올라 앉아 있다. 영보마을 가학리 안에 영보 마을이 있는데, 산 속에 숨겨져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찾기 힘든 마을이다. 동학동민 시절 동학군들이 숨어 있던 마을이기도 하다. 영보는 재 넘어 길게 집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담안골 마을 앞에 돌담이 있어, 돌담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율지(밤갓)마을 밤이 유난히 많아 밤 마을로 불렸다. 서당골마을 서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순기미마을 '따순'은 '따뜻한'의 전라도 사투리다. 마을이 따뜻하고 양지 바른 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도청리(道廳里) 면사무소가 있어 도청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정확하지가 않다. 도청은 예로부터 큰 마을이었다. 도청이란 이름이전에는 큰 마을이란 뜻의 대리로 불렸다고 한다. 대덕면 이전에 도청은 내덕면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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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면(鎭東面) 진동면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한 면이다. 마산합포구의 4개면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곳이며, 다양한 택지지우과 산업지구를 조성하고 있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행정구역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진동면에서 가져왔으며, 원본 사이트는 지도에 링크되어 있음 지리 구산면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스처 지나가는 곳이다. 진동면은 진주나 고성, 통영 등으로 갈 경우 반드시 길게 통과해야 하는 지역이다. 3년 전에 무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설되어 현재는 진동을 통과하지 않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진동은 출퇴근시간이나 연휴, 명절에는 차량이 몰려 숨이 막힐 정도로 길이 막혔다. 지도 크게 보기 진동면의 동쪽은 구산면, 현동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내서읍, 남쪽으로는 진해만이 펼쳐진다. 서쪽은 진북면과 접한다. 진분에서 함안군의 여향면과 함양면, 남해고속도로(순천-부산)로 올라가는 옛길이 있다. 현재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뚤리면서 훨씬 빨라졌다. 거리상으로는 구산면이 훨씬 마산에 가까이 있지만 실제 생활은 진동이 작은 마산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가깝다. 2022년 7월 진동에서 바라본 진해만 진동리 진동리 진동면 행정구역 고현리(古縣里) 신기리(新基里) 사동리(社洞里) 진동리(鎭東里) 요장리(蓼場里) 다구리(多求里) 교동리(橋洞里) 태봉리(台封里) 인곡리(仁谷里) 동전리(東田里) 진동면 지명유래 진동 지명유래 진동은 진의 동쪽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러시아가 마산을 해군극동함대 기지로 사용했다. 일본은 이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현재의 진동면 위치에 있었던 군항지를 진해 웅천지역으로 옮기면서 서면, 북면, 동면 가운데 동면을 진동(鎭東)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일제의 의해 만들어진 지명을 수정하지 않고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고현리(古縣里) '고현'이란 옛 현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포상팔국의 하나인 포국으로 내포라 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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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면 구산면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한 면이다.  구산면 행정 구역 유산리(柳山里) 마전리(麻田里) 석곡리(石谷里) 수정리(水晶里) 내포리(內浦里) 옥계리(玉溪里) 반동리(盤洞里) 구복리(龜伏里) 심리(深里) 난포리(藍浦里) 지명유래 유산리(柳山里) 유산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냇가에 버드나무나가 많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윗 유산은 산세가 좋았던지 거기 집단 해 살던 윤씨문(尹氏門)에서 칠원군수가 나셨다. 아래 유산을 유천(柳川)이라고 한다. 윗 마을엔 칠원윤씨, 상주주씨가 아래 마을엔 경주최씨, 인동장씨가 대표되는 성씨로 거주하고 있다. 정조 13년에 간행된 호구총수에는 칠원현 구산면에 속한 입석리로 기록되어 있다. 입석리가 왜 유산리로 바뀌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유산과 유촌이란 지명은 윗의 유산에 의한 것이다. 높은 산쪽에 있는 곳은 유산이 되고, 하천쪽에 자리한 곳은 유촌이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유촌은 하유산, 유산은 상유산이라 불렀다. 한다. 지도 크게 보기 마전리(麻田里) 마전은 글자 그대로 삼밭이다.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오목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盆地로 되어 있어 바람세가 적고, 땅이 기름져 예부터 삼을 많이 심어 주 생업으로 했음으로 麻田이라 이름 하였다. 이 마을엔 이씨가 입주하기 전에는 신녕여씨가 임란 전에 들어와서 제법 잘 산 것 같다는 전언이다. 그것을 증명할만한 것은 마을 북쪽의 벌판에서 기와, 토기, 도기 등의 유물이 나오는 것을 보아서 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로는 아마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남해안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자행할 때 인지라 왜구를 피해 모든 재산을 땅에 묻어두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군묘가 있다기에 찾았더니 그는 임진왜란 때부터 충무공의 副尉로 있었던 장군으로 丁酉再亂 때 충익공 곽재우 장군과 함께 창녕 火旺山 전투에서 전사하신 함안의 순흥안씨의 묘소였는데 묘비는 하도 오래되어 글자가 마멸되어 史蹟을 알아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호...

경상남도 창원시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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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개요 창원시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이며, 경상남도 최대도시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유일한 특례시다. 2010년 마산시, 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어 5개의 일반구가 존재하며, 이것은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많다.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창원시의 현재 지형은 1908년 일제강점기 직전 창원부와 거의 비슷하다. 이후 창원부는 마산부 - 창원군으로 바뀌고, 해방후인 1949년 마산부는 마산시가 되고, 창원은 창원군으로 남는다. 기존의 창원군에서 1955년 진해읍이 떨어져 나가 진해시가 된다. 1980년 창원군은 다시 창원시와 의창군, 창원군으로 분립한다. 1995년 의창군은 마산시에 편입되고, 창원군은 창원시에 편입된다. 2010년 7월 1일 마산시와 창원시, 진해시는 투표룰 통해 창원시로 통합된다. 안타깝게 의원들의 투표로 진행되었고, 주민들는 투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지역간의 앙금으로 가라안지 않고 있다. 현재도 마산에 가면 창원시에 비해 개발도 되지 않고 버려졌다고 화를 주민들이 적지 않다. 창원시 행정구역 창원시는 5개 일반구, 2읍, 6면, 49동(법정동 194개)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 일반구 의창구 성산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진해구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는 구 마산시다. 의청구와 성산구는 구창원시에 속한다. 진해구는 구진해시다. 전체적인 구조에서 형태로 보면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는 구도심에 속하며, 의창구와 성산구는 구 창원시에 속하며, 신도시이다. 진해구는 관광도시이며, 큰 변화는 없다. 통합되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구마산시로 거의 개발이 되지 않고 있으며, 구도심 그대로 보존?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은근히 창원시 마산시는 미묘한 갈등과 반목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프라가 잘 형성된 구창원으로 옮겨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창구 행정구역 동읍 북면 대산면 의창동 팔룡동 명곡동 봉림동 용지동 성산구 행정구역 반송동 중앙동 상남동...

경상남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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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경상남도는 경상도의 남쪽이며, 경주와 상주의 앞 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 인구는 329만명이며 전국인구의 6.5%를 차지한다. 면적은 10.532km2로 전국의 10.5%를 차지한다. 행정구여은 8개시, 10개군, 314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남도 도청은 경상남도 진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으로 옮겨 있다. 1983년 부산에서 창원시로 이전하였다. 현재 경상남도 도청은 창원시 의창구 중앙대로 300에 위치한다. 8개시 창원시 김해시 진주시 양산시 거제시 통영시 사천시 밀양시 10개군 함안군 거창군 창녕군 고성군 하동군 합천군 남해군 함양군 산청군 의령군 대한민국 행정구역

전라남도 고흥군 행정구역

 행정구역 전라남도 고흥군은 2읍 14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31개의 법정리가 있다. 2022년 11월 현재 고흥군의 인구는 62,007명이다. 2개 읍 고흥읍 도양읍 14면 풍양면 도덕면 금산면 도화면 포두면 봉래면 동일면 점암면 영남면 과역면 남양면 동강면 대서면 두원면 고흥군 역사 선사시대 고흥에 다양한 지석묘가 500여개 된다. 해안선을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유물 두원면 운대리 운암산능 석관 포두면 장수리 수몰지구 토기류 삼국시대 삼한 시대에 마한의 영토얐다고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의 땅으로 편입된다. 이후 신라가 통일하면서 신라 땅이 된다. 5개의 도독부를 둔다. 전라남도에 사양, 대방, 분차 3주가 배치되고 고흥은 분차군에 속한다. 분차군(낙안군)은 4개의 현을 다스린다. 조조혜현(남양면), 두힐현(두원면), 비사현(동강면) 고려시대 해양도 14주 62현 중의 3현이 된다.  고려 제8대 현종 9년인 1018년에 해양도와 강남도(전북)을 합하여 전주와 나주의 이름을 따서 전라도로 개칭하고, 치소를 전주에 두었다. 조선시대 세종 8년에 고흥과 남양의 뒷글자를 따서 흥양현으로 고쳐 부른다. 고종 26년(1895년) 흥양현을 양양군으로 바꾼다. 1914년 고흥군으로 개칭한다. 전라남도 행정구역 대한민국 행정구역

전라남도 장흥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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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군 장흥군은 전라남도에 속하며 3읍과 7면 294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2023년 10월 말 기준 35,119명이다. 남자는 17,173명 여자는 17,946명이다. 장흥군 행정지도 장흥군 지도출처 : 장흥군 홈페이지 3읍 장흥읍 관산읍 대덕읍 7면 용산면 안양면 장동면 장평면 유치면 부산면 회진면 장흥군 내력 군목은 동백나무 군화는 진달래 군조는 비둘기 상징동물 표동이 장흥군은 표고버섯과 한우가 가장 유명하다. 매 년 물축제가 큰 행사로 진행된다. 도수희 교수의 백제어 연구에 의하자면 마한의 막로국(莫盧國)이라고 되어있었다.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이다. 당시 치소는 지금의 관산읍이다. 757년 오아현(烏兒縣)으로 개칭하고 보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 정안현(定安縣)으로 개칭하고 영암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성종이 정주(定州) 또는 관산(冠山)이라는 별호를 부여하였다. 고려 인종이 공예왕후 임씨의 고향이라 하여 장흥부(長興府)로 승격시켰다. 영암군의 속현인 수령현(遂寧縣), 탐진현(耽津縣)과 보성군의 속현인 회령현(會寧縣), 장택현(長澤縣), 두원현(荳原縣)이 장흥의 속현이 되었다. 뒤에 도량도부곡(道良道部曲)이 도양현(道陽縣)으로 승격되어 6개 속현을 관할하였다. 1265년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하였다. 1310년 전국의 목(牧)을 정리하면서 다시 장흥부로 강등되었다. 1379년에 왜구의 침입을 피해 능성의 속현인 철야현으로 이전하였다가, 1392년에 수령현의 중령산(中寧山)에 성을 쌓고 치소를 이전하였다. 1409년 전라도의 모든 속현과 향·소·부곡이 폐지되면서 장흥부의 6개 속현, 6개 향, 13개 소가 모두 폐지되었다. 1413년 장흥도호부가 되었다. 이듬해 성이 좁다 하여 옛 수령현의 터에 성을 쌓고 장흥의 치소로 삼았다. 1417년 옛 탐진현이 도강현에 편입되어 강진현이 되었다. 1441년 옛 두원현과 도양현이 흥양현에 편입되었다.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나주부 장흥군으로 개편하였다. 군내면, 부서면,...

전라남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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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전라남도의 전라도가 남도와 북도로 나뉜 것이며, 전라는 전주와 나주의 합성어이다. 전라남도 시청은 무안군에 있으며, 5개의 시, 17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33개의 읍, 196개의 면, 68개의 동, 1,797의 통, 6,860의 리, 24,960의 반이 있다. 전라남도 개요 면적 12,360.5㎢ - 전국 면적의 12.3% 인구 총 1,855,575, 한국인  1,811,554 외국인  44,021 세대수  912,202 5개의 시 목포시 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나주시 17개의 군 강진군 고흥군 곡성군 구례군 담양군 무안군 보성군 보성군 신안군 완도군 영암군 장성군 장흥군 진도군 함평군 화순군 해남군 폐지/통합 행정구역 광산군 - 1988년 1월 1일 광주직할시에 편입하여 광주 광산구가 됨 송정시 - 1988년 1월 1일 광주직할시에 편입하여 광주 광산구가 됨 광양군 - 1995년 1월 1일 동광양시와 합병하여 광양시가 됨 동광양시 - 1995년 1월 1일 광양군과 합병하여 광양시가 됨 여천군 -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에 병합 여천시 -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에 병합 나주군 - 1995년 1월 1일 나주시에 병합 승주군 - 1995년 1월 1일 순천시에 병합

전라남도 강진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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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군 강진군은 전라남도의 하위 자치단체이다. 1읍과 10면이 있다. 인구는 2023년 7월 현재 32,968명이다. 행정구역 읍 1 면 10 법정리 112 자연마을 293 반 612 면적 500.93㎢ 1읍 / 강진읍 면 10 /  군동면  칠량면  대구면  마량면  도암면  신전면  성전면  작천면  병영면  옴천면  강진읍 (康津邑) 동성리(東城里) 동문(東門),목화(木花),고내(庫內),동명(東明) 남성리(南城里) 남문(南門),탑동(塔洞) 서성리(西城里) 서문(西門),신성(新城),홍암(紅岩) 교촌리(校村里) 신풍(新豊),교촌(校村),점수(点水) 목리(牧里) 목리(牧里) 평동리(平洞里) 중앙동(中央洞),평동(平洞) 남포리(南浦里) 남포(南浦) 학명리(鶴鳴里) 도원(桃源),호산(虎山),학산(鶴山), 초동(草洞) 임천리(林川里) 학림(鶴林),신천(新川) 영파리(永波里) 장동(壯洞),팔영(八永),차경(且耕) 덕남리(德南里) 기룡(基龍),덕동(德洞),춘곡(春谷) 송전리(松田里) 송정(松亭),장전(長田),화전(花田) 송덕리(松德里) 송현(松峴),봉덕(鳳德) 춘전리(春田里) 신학(神鶴),부춘(富春),보전(寶田),월정(月汀) 서산리(瑞山里) 발산(鉢山),향일(向日),옥치(玉峙),월남(月南) 군동면(郡東面) 파산리(琶山里) 금곡(金谷),신리(新里),생동(笙洞) 호계리(虎溪里) 호동(虎洞),문화(文化),영포(永浦),갈전(葛田),오산(五山) 라천리(羅川里) 평리(平里),남향(南向),시목(柿木),동동(東洞) 금강리(錦江里) 내동(內洞),안풍(安豊),서은(瑞隱) 화산리(華山里) 화방(花坊),삼화(三化),영화(永化) 용소리(龍沼里) 안지(安池),신기(新基),석동(席洞) 풍동리(豊洞里) 풍동(豊洞),봉산(峰山),벽송(碧松),명암(鳴岩) 장산리(獐山里) 장항(獐項),중산(中山),대곡(大谷...

부산광역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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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은 어디서 왔을까? 부산(釜山)은 조선시대에는 부자 부富를 사용하여, 산부자, 또는 부자 산山의 부산(富 山)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갑자기 가마솥 부釜를 사용하여 부산(釜山)이 되고 말았다.  부산(富山)  ➡ 부산(釜山) 먼저 부산은 현재의 동구 부산진을 부산이라 말하며, 조선시대 그곳을 부산포라 하였다. 그러니까 부산의 기원은 부산진인 셈이다. 동구는 이것을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산진역 '수정가로공원' 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글귀가 '부산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부산의 기원설은 다양하다.  증산(甑山)설 부산진역 뒷편 산은 증산(甑山)이다. 증산 정산에 아직도 임진왜란 당시에 건축된 증산왜성이 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부산 향토학자들이 주장하는 곳이 증산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편찬한 부산부사원고(釜山府史原稿)에 부산이 등장한다. 이것을 근거로 증산설을 주장한다. 신라시대 부산은 대증현(大甑縣)이라 불렸다. 대증현의 증이 부산이 된 것이다. 후에 부산(富山)이 부산(釜山)이 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읍지에도 산이 가마솥(釜) 모양이라 소개한다. 그리고 그 아래를 부산포로 불렀으니 당연히 부산이 그곳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자성대설 자성대는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자성대의 자는 아들 자이다. 그럼 어머니는 어디인가? 어머니는 증산의 왜성을 뜻한다. 그런데 부산 사람들은 아직도 부산진성으로 잘 부르지 않고 자성대라 부른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하여튼 자성대설을 주장하는 것은 증산의 증이란 표현이 임진왜란 당시에 여러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증산이란 명칭은 임진왜란 때 지어진 범천증산성이 축조된 다음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 이전부터 사용된 부산(釜山)은 증산과는 상관이 없게 된다. 이것은 부산근대역사관 나동욱 관장과 동아시아문물 연구소 심봉근 소장이 주장한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경상좌수영지도에는 왜성을 증성(甑城)...

부산광역시 행정구역

 부산광역시 부산은 대한민국의 광역시이며, 2009년 12월 31일 기준 15개 차치구와 1개 군으로 되어 있으며, 205개 행정동이 있습니다. 166개의 리와 4개 읍, 1개 면이 있습니다. 리와 읍, 면은 주변의 김해와 기장 등은 부산시로 편입하면서 기존의 행정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부산의 자치구와 군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남구 북구 해운대구 사하구 금정구 강서구 연제구 수영구 사상구 기장군 부산의 각 자치구 하위 행정동 중구 행정동 중앙동 · 동광동 · 대청동 · 보수동 · 부평동 · 광복동 · 남포동 · 영주1동 · 영주2동 서구 행정동 동대신1동 · 동대신2동 · 동대신3동 · 서대신1동 · 서대신3동 · 서대신4동 · 부민동 · 아미동 · 초장동 · 충무동 · 남부민1동 · 남부민2동 · 암남동 동구 행정동 초량1동 · 초량2동 · 초량3동 · 초량6동 · 수정1동 · 수정2동 · 수정4동 · 수정5동 · 좌천동 · 범일1동 · 범일2동 · 범일5동 영도구 행정동 남항동 · 영선1동 · 영선2동 · 신선동 · 봉래1동 · 봉래2동 · 청학1동 · 청학2동 · 동삼1동 · 동삼2동 · 동삼3동 부산진구 행정동 부전1동 · 부전2동 · 연지동 · 초읍동 · 양정1동 · 양정2동 · 전포1동 · 전포2동 · 부암1동 · 부암3동 · 당감1동 · 당감2동 · 당감4동 · 가야1동 · 가야2동 · 개금1동 · 개금2동 · 개금3동 · 범천1동 · 범천2동 동래구 행정동 수민동 · 복산동 · 명륜동 · 온천1동 · 온천2동 · 온천3동 · 사직1동 · 사직2동 · 사직3동 · 안락1동 · 안락2동 · 명장1동 · 명장2동 남구 행정동 대연1동 · 대연3동 · 대연4동 · 대연5동 · 대연6동 · 용호1동 · 용호2동 · 용호3동 · 용호4동 · 용당동 · 감만1동 · 감만2동 · 우암동 · 문현1동 · 문현2동 · 문현3동 · 문현4동 북구 행정동 구포1동 · 구포2동 · 구포3동 · 금곡동 · 화명1동 · 화명2동 ·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