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행정구역 및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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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진면(會鎭面) 회진면은 전라남동 장흥군 하위 행정구역으로, 대덕읍과 더불어 장흥의 가장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대덕읍에 속했으나 1986년 분면하여 회진면이 되었다. 역사적 의미에서 회진은 주변 지역보다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육지 도로가 원활하지 않았을 때 조선시대애는 회령면으로 존속할 정도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대덕면관활로 들어간다.  회진의 다른 이름은 회령이며, 회령의 옛 지명은 마사량이었다. 마사량은 백제시대 회령이 마사량현(馬斯良縣)이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940년 태조 23년 회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까지 그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조선시대에는 회령포영(會寧浦營)이 있어 수군만호가 관할했다. 왜구의 침입이 잦은 탓에 이곳에 회령진성을 지어 왜구를 막았다. 회령진성 복구된 모습 회령진성 복구된 모습 회진면 행정구역 회진면에는 5개의 법정리와 16개의 행정리가 있다. 회진면 법정리 대리(大里) 덕산리(德山里) 신상리(新上里) 진목리(眞木里) 회진리(會鎭里) 회진면 행정리 진목리 진목리 이진목리 안삭금리 회진리 이회진리 선학동리 선자리 서구 덕흥리 남구 동구 덕산리 덕산리 장산리 노력리 대리 대리(大里) 신상리 신상리 신덕리 회진면 지명유래 대리(大里) 대리의 지명은 고려시대고 거슬러 가야 한다. 고려 말 도청리로 불렸고, 조선말에 대리고 개편한다. 덕산리(德山里) 노력도 / 노력항 회진면 덕산리 대섬 남쪽에 있는 긴 섬이다. 『해동지도』(장흥)에 회진 동쪽 우도(우산도) 남쪽에 노력도(老力島)가 표시되어 있다. 원래 장흥도호부 저도면에 속한 섬이었으나 1895년 완도군이 설치되면서 완도로 편입되었다. 그후 1914년 장흥군 대덕읍에 편입되었다가 1986년 장흥군 회진면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원래 노룡이 있는 섬이라 하여 노룡도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력도로 바뀌었는데, 지하수가 좋아 노인들이 장수하는 섬이라 하여 노력도라 부른다고도 한다. 지형이 용이 뛰어 오르...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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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읍(大德邑) 전라남도 장흥군 하위 행정구역 중의 하나이다. 회진면과 더불와 장흥군의 최남단에 속한다. 1980년 12월 1일 대덕면에서 대덕읍으로 승격한다. 회진리를 두었지만 1986년 분면하여 회진면이 되었다. 당시 회지면이 분면을 반대하여 많은 시위를 했다고 한다. 대덕면 소재일 때도 대덕과는 다르게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대덕읍은 한우가 유명한 장흥군 소재 답게 많은 한우를 기르고 있다. 가는 마을마다 한우 축사가 즐비해 외지 사람들은 쉽게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가학리는 마을 입구와 주변에 축사로 뒤덮여 있는 실정이다.  천관산 동남부의 평탄한 구릉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농업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양파, 파, 배추가 많이 나며, 특히 옛부터 대덕읍은 양배추를 많이 재배해 양배추 산지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대덕읍 ] 대덕읍 법정리 가학리 도청리 분토리 신리 신월리 연정리 연지리 옹암리 잠두리 대덕읍 지명유래 가학리(駕鶴里) 가학은 학이 많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도 학처럼 생겼다고 한다. 대덕읍에서 삭금마을로 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대덕천이 흐르는 주변은 지대가 낮아 가학은 약간 산쪽으로 올라 앉아 있다. 영보마을 가학리 안에 영보 마을이 있는데, 산 속에 숨겨져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찾기 힘든 마을이다. 동학동민 시절 동학군들이 숨어 있던 마을이기도 하다. 영보는 재 넘어 길게 집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담안골 마을 앞에 돌담이 있어, 돌담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율지(밤갓)마을 밤이 유난히 많아 밤 마을로 불렸다. 서당골마을 서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순기미마을 '따순'은 '따뜻한'의 전라도 사투리다. 마을이 따뜻하고 양지 바른 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도청리(道廳里) 면사무소가 있어 도청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정확하지가 않다. 도청은 예로부터 큰 마을이었다. 도청이란 이름이전에는 큰 마을이란 뜻의 대리로 불렸다고 한다. 대덕면 이전에 도청은 내덕면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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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면(鎭東面) 진동면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한 면이다. 마산합포구의 4개면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곳이며, 다양한 택지지우과 산업지구를 조성하고 있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행정구역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진동면에서 가져왔으며, 원본 사이트는 지도에 링크되어 있음 지리 구산면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스처 지나가는 곳이다. 진동면은 진주나 고성, 통영 등으로 갈 경우 반드시 길게 통과해야 하는 지역이다. 3년 전에 무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설되어 현재는 진동을 통과하지 않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진동은 출퇴근시간이나 연휴, 명절에는 차량이 몰려 숨이 막힐 정도로 길이 막혔다. 지도 크게 보기 진동면의 동쪽은 구산면, 현동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내서읍, 남쪽으로는 진해만이 펼쳐진다. 서쪽은 진북면과 접한다. 진분에서 함안군의 여향면과 함양면, 남해고속도로(순천-부산)로 올라가는 옛길이 있다. 현재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뚤리면서 훨씬 빨라졌다. 거리상으로는 구산면이 훨씬 마산에 가까이 있지만 실제 생활은 진동이 작은 마산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가깝다. 2022년 7월 진동에서 바라본 진해만 진동리 진동리 진동면 행정구역 고현리(古縣里) 신기리(新基里) 사동리(社洞里) 진동리(鎭東里) 요장리(蓼場里) 다구리(多求里) 교동리(橋洞里) 태봉리(台封里) 인곡리(仁谷里) 동전리(東田里) 진동면 지명유래 진동 지명유래 진동은 진의 동쪽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러시아가 마산을 해군극동함대 기지로 사용했다. 일본은 이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현재의 진동면 위치에 있었던 군항지를 진해 웅천지역으로 옮기면서 서면, 북면, 동면 가운데 동면을 진동(鎭東)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일제의 의해 만들어진 지명을 수정하지 않고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고현리(古縣里) '고현'이란 옛 현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포상팔국의 하나인 포국으로 내포라 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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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면 구산면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한 면이다.  구산면 행정 구역 유산리(柳山里) 마전리(麻田里) 석곡리(石谷里) 수정리(水晶里) 내포리(內浦里) 옥계리(玉溪里) 반동리(盤洞里) 구복리(龜伏里) 심리(深里) 난포리(藍浦里) 지명유래 유산리(柳山里) 유산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냇가에 버드나무나가 많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윗 유산은 산세가 좋았던지 거기 집단 해 살던 윤씨문(尹氏門)에서 칠원군수가 나셨다. 아래 유산을 유천(柳川)이라고 한다. 윗 마을엔 칠원윤씨, 상주주씨가 아래 마을엔 경주최씨, 인동장씨가 대표되는 성씨로 거주하고 있다. 정조 13년에 간행된 호구총수에는 칠원현 구산면에 속한 입석리로 기록되어 있다. 입석리가 왜 유산리로 바뀌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유산과 유촌이란 지명은 윗의 유산에 의한 것이다. 높은 산쪽에 있는 곳은 유산이 되고, 하천쪽에 자리한 곳은 유촌이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유촌은 하유산, 유산은 상유산이라 불렀다. 한다. 지도 크게 보기 마전리(麻田里) 마전은 글자 그대로 삼밭이다.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오목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盆地로 되어 있어 바람세가 적고, 땅이 기름져 예부터 삼을 많이 심어 주 생업으로 했음으로 麻田이라 이름 하였다. 이 마을엔 이씨가 입주하기 전에는 신녕여씨가 임란 전에 들어와서 제법 잘 산 것 같다는 전언이다. 그것을 증명할만한 것은 마을 북쪽의 벌판에서 기와, 토기, 도기 등의 유물이 나오는 것을 보아서 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로는 아마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남해안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자행할 때 인지라 왜구를 피해 모든 재산을 땅에 묻어두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군묘가 있다기에 찾았더니 그는 임진왜란 때부터 충무공의 副尉로 있었던 장군으로 丁酉再亂 때 충익공 곽재우 장군과 함께 창녕 火旺山 전투에서 전사하신 함안의 순흥안씨의 묘소였는데 묘비는 하도 오래되어 글자가 마멸되어 史蹟을 알아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호...

경상남도 창원시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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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개요 창원시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이며, 경상남도 최대도시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유일한 특례시다. 2010년 마산시, 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어 5개의 일반구가 존재하며, 이것은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많다.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창원시의 현재 지형은 1908년 일제강점기 직전 창원부와 거의 비슷하다. 이후 창원부는 마산부 - 창원군으로 바뀌고, 해방후인 1949년 마산부는 마산시가 되고, 창원은 창원군으로 남는다. 기존의 창원군에서 1955년 진해읍이 떨어져 나가 진해시가 된다. 1980년 창원군은 다시 창원시와 의창군, 창원군으로 분립한다. 1995년 의창군은 마산시에 편입되고, 창원군은 창원시에 편입된다. 2010년 7월 1일 마산시와 창원시, 진해시는 투표룰 통해 창원시로 통합된다. 안타깝게 의원들의 투표로 진행되었고, 주민들는 투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지역간의 앙금으로 가라안지 않고 있다. 현재도 마산에 가면 창원시에 비해 개발도 되지 않고 버려졌다고 화를 주민들이 적지 않다. 창원시 행정구역 창원시는 5개 일반구, 2읍, 6면, 49동(법정동 194개)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 일반구 의창구 성산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진해구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는 구 마산시다. 의청구와 성산구는 구창원시에 속한다. 진해구는 구진해시다. 전체적인 구조에서 형태로 보면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는 구도심에 속하며, 의창구와 성산구는 구 창원시에 속하며, 신도시이다. 진해구는 관광도시이며, 큰 변화는 없다. 통합되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구마산시로 거의 개발이 되지 않고 있으며, 구도심 그대로 보존?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은근히 창원시 마산시는 미묘한 갈등과 반목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프라가 잘 형성된 구창원으로 옮겨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창구 행정구역 동읍 북면 대산면 의창동 팔룡동 명곡동 봉림동 용지동 성산구 행정구역 반송동 중앙동 상남동...

경상남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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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경상남도는 경상도의 남쪽이며, 경주와 상주의 앞 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 인구는 329만명이며 전국인구의 6.5%를 차지한다. 면적은 10.532km2로 전국의 10.5%를 차지한다. 행정구여은 8개시, 10개군, 314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남도 도청은 경상남도 진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으로 옮겨 있다. 1983년 부산에서 창원시로 이전하였다. 현재 경상남도 도청은 창원시 의창구 중앙대로 300에 위치한다. 8개시 창원시 김해시 진주시 양산시 거제시 통영시 사천시 밀양시 10개군 함안군 거창군 창녕군 고성군 하동군 합천군 남해군 함양군 산청군 의령군 대한민국 행정구역

전라남도 고흥군 행정구역

 행정구역 전라남도 고흥군은 2읍 14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31개의 법정리가 있다. 2022년 11월 현재 고흥군의 인구는 62,007명이다. 2개 읍 고흥읍 도양읍 14면 풍양면 도덕면 금산면 도화면 포두면 봉래면 동일면 점암면 영남면 과역면 남양면 동강면 대서면 두원면 고흥군 역사 선사시대 고흥에 다양한 지석묘가 500여개 된다. 해안선을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유물 두원면 운대리 운암산능 석관 포두면 장수리 수몰지구 토기류 삼국시대 삼한 시대에 마한의 영토얐다고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의 땅으로 편입된다. 이후 신라가 통일하면서 신라 땅이 된다. 5개의 도독부를 둔다. 전라남도에 사양, 대방, 분차 3주가 배치되고 고흥은 분차군에 속한다. 분차군(낙안군)은 4개의 현을 다스린다. 조조혜현(남양면), 두힐현(두원면), 비사현(동강면) 고려시대 해양도 14주 62현 중의 3현이 된다.  고려 제8대 현종 9년인 1018년에 해양도와 강남도(전북)을 합하여 전주와 나주의 이름을 따서 전라도로 개칭하고, 치소를 전주에 두었다. 조선시대 세종 8년에 고흥과 남양의 뒷글자를 따서 흥양현으로 고쳐 부른다. 고종 26년(1895년) 흥양현을 양양군으로 바꾼다. 1914년 고흥군으로 개칭한다. 전라남도 행정구역 대한민국 행정구역